얼마 뒤 신문사에서 신춘문예와 학생논문 당선자를 불러 시상식을 했다.
대학생이라도 이쯤 되면 강제 징집되는 상황이었다.호남선 여행의 강렬한 체험은 나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뜨게 해줬다.
열차 등급이 낮은 것도 아니었다.어쨌든 나는 정보부에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반공 교육을 받아야 했다.나로선 20대 초반이라 겁도 없이 말을 꺼낸 것이지만 나중엔 후회를 많이 했다.
이런 ‘호남의 기억을 소환한 건 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이었다.교련(학생 군사훈련) 반대.
그 전에 경부선을 탔을 때는 전혀 볼 수 없던 모습이었다.
나는 국가 발전에서 소외된 호남의 풍경을 마주하고 가슴이 뜨거워졌다.군인들이 대학 캠퍼스까지 탱크를 끌고 왔다.
이후 입대가 연기된 것을 보면 아버지의 노력이 성공한 모양이었다.아버지는 지금으로 치면 하위 계급의 해양경찰이었다.
호남선 열차의 그 차림 그대로였다특히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관객이라면 신선한 공기처럼 다가갈 수 있는 영화다.